영국 재무장관이 빨간 상자를 들어보이는 까닭은…156년 전통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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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이 지난 30일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지난 7월 총선에서 14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노동당 정권이 처음 내놓는 예산안이란 점 때문에 영국 안팎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리브스 장관은 "공공 재정의 안정을 되찾고 공공 서비스를 재건하겠다"며 연간 400억 파운드(약 71조5000억원) 규모의 증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25%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영국 언론들은 "리브스 장관이 지난 1993년 보수당 정권의 재무장관 노먼 라몬트 이후 31년 만에 가장 큰 세금 인상을 발표했다"며 대서특필했다.
[런던 로이터=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이 3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다우닝가에 있는 사무실 앞에서 빨간색 예산 가방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4.10.30. ihjang67@newspim.com |
리브스 장관은 이날 오전 재무장관 관저인 다우닝가 11번지를 나오면서 문 앞에 잠깐 서더니 빨간 박스(Red box)를 들어보였다. 이 순간 주위에 몰려있던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사진이 잘 찍히도록 좌우로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듯 보였다.
영국인들에겐 친숙하지만 내막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겐 "무슨 대단한 일이 터졌나"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었다.
사연은 15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장관들은 주요 서류와 자료, 메모 등을 담는 상자을 갖고 있는데 대부분 빨간색이다.
재무장관도 이런 상자를 갖고 있다. 예산안을 발표하는 날 재무장관은 이 상자를 들고 의회로 가는데 그 안에는 예산안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고 그날 발표할 연설문과 메모 등이 들어있다고 한다.
1868년 당시 재무장관이던 조지 와트는 의회에 도착해서 이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분명 있어야 할 연설문이 없었다. 집에 놓고 온 것이다. 와트 장관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런 소식은 영국 정계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큰 화제가 됐다.
이후로 영국 재무장관은 "이 가방에 예산안 관련 문서가 잘 담겨 있다"는 의미로 상자를 들어 보여주게 됐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에서 또 하나의 전통이 만들어진 것이다.
재무장관의 예산 상자는 1853년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총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윌리엄 글래드스톤이 처음 사용했다. 그는 총 4차례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그가 사용한 예산 상자는 2011년까지 딱 2명(제임스 캘러헌과 고든 브라운)을 제외하고 51명의 후임 재무장관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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